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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ure reading/Ecclesiastes +10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1. 본문은 전도서의 결론으로 전도서의 목적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허무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참되게 사는 길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9-10절). 전도서의 말씀이 힘들지라도, 전도서는 인생이 가야할 방향을 바르게 보여주고 있습니다(11절). 전도자의 지혜가 내 인생에 깊이 박히도록 기도합시다.

'전도자의 지혜'라... 개인적으로 전도서에서 이야기하는 전도자의 지혜가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도서를 솔로몬이 지었다라고 하는 전통적 해석과 솔로몬의 삶에 대한 실망 때문에 생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강조 외에는 흔한 처세술 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서가 씌어졌을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간의 한계는 여전하고 삶의 모순도 그러하다. 어쩌면 그것때문에 '전도서'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다.

2. 지식이 많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다 헛된 일입니다(12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바른 모습입니다(13절).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며(14절),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고(마 6:33),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합시다(살전 5:16-18).

오늘의 결론은 전도서가 왜 성경에 포함되어 있어야하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아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 (약 2:26)이듯이 실천이 없는 지식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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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1. 젊은 때는 일에 열중하고 성취감을 좇아 살아가지만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루하루 젊음은 사그라지고, 육체는 힘을 잃고,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3-7절). 젊을수록 오히려 죽음을 마주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을 아는 젊음은 생기발랄하나 진지하고, 야망이 넘치나 깊이가 있으며, 두려움이 없으나 겸손합니다.


1992년, 내가 고3 수험생이었을 때 한국은 '다미선교회'라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단체에 의해 시끄러웠다. 그때 어떤 목사님이 '왜 지구의 종말만 걱정하고, 자기의 종말은 걱정하지 않는가, 오늘 당장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데'라고 비판하던 일이 기억난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삶엔 끝이 없을 것처럼 산다. 젊을 수록 그렇다. 지금의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벧전 1:24), 우리 인생은 '날아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시 90:10).

2. 전도자는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아,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창조주를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1, 7절). 사람이 ‘생명의 창조주’께로 나가지 않는다면, 죽음 가운데 모든 것이 헛되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님, 그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성령님을 기억하며 찬양합시다.

이러한 '인간의 유한함' 앞에서, 좌절하고 냉소할 것인가 아니면 창조주를 찾아 그에게 굴복할 것인가의 두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12:1, 개역한글)고 권한다. 대학 신입생시절, 학교안 큰 길엔 여러 동아리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들이 가득했다. 그중에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이 다른 말 하나 없이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라고만 적힌 ivf의 플래카드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말씀은 계속 내게 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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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6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7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1. 인색치 않고 넉넉히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재앙의 날에 베푼 모든 것이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1-2절). 현재의 수고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습니다(6b절). 오로지 하나님만이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실 뿐입니다(5절). 그러니 이것저것 계산하지 말고(4절), 선하고 올바른 것이라면 주저 없이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6a절).

전도서와 같은 본문을 대할 때, 한 구절 한 구절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무역과 분산투자를 권하는 오늘 본문의 첫부분을 그럼, 하나님이 무역을 좋아하신다라고 해석할 것인가? 하나님이 FTA를 지지하신다고? 옳지 않은 무역으로 피해를 입는 가난한 나라가 많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전도서의 이런 교훈은 오늘날 세상의 흔한 상식과 유사하다. 당시의 상식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본문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이미 타락한) 세상에서의 상식은 이러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상식을 넘어서 왜 이런 상식이 통용되는지, 이러한 상식의 이유 (인간의 유한함)가 무엇인지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에 기반한 비상식적 삶을 살 수도 있음을 결단해야 할 것이다.

2. 젊은 때는 젊음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9a절). 세월은 속히 가니(10b절), 젊을 때에 도전과 모험을 제대로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무분별하게 함부로 사는 것은 어리석습니다(10a절). 언젠가 이 모든 날에 대한 ‘심판의 날’(9절)이 올 것을 알고 지혜롭게 젊음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젊음을 즐기고 있습니까?

젊음은 상대적인 것이다. 20대는 30대보다 젊고 30대는 40대보다, 40대는 50대보다 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인 현재의 젊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현재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최후의 심판이든지 더 나이 먹은 다음의 후회이든지. 그러므로 오늘을 누리되,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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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13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14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15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16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17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18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19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1. 우매자는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함부로 말하는 경향이 있으며(14절), 결국은 그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12-13절). 또한 우매자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만, 방향(목적)이 없기에 결국은 헛수고가 될 뿐입니다(15절). 책임 없이 말하며, 자신도 지키지 못할 (목적 잃은) 말을 남에게 쉽게 하는 태도는 없는지 돌아봅시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지혜롭지 않다는 것은 정말 분명하다. 우매자가 말을 많이한다는 표현도 흥미롭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마 6:7)이다. 기도에 '중언부언'하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우매자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2. 지도자들이 사리사욕에 눈멀어 백성들을 위하지 않은 채 향락에 빠진 나라는 망하지만(16절), 정한 녹(祿)에 만족하고 백성만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17-18절). 잔치와 포도주와 돈을 잘 사용하면 유용하듯(19절), 불의한 권력자와 부자를 무조건 욕하기보다(20절), 그들이 가진 지위와 부를 바르게 사용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시심의 "무조건 욕하기 보다 기도해야 한다"라는 표현은 여전히 좀 거스린다. 불의한 권력자와 부자들은 일단 욕을 먹어야 한다. 그들을 위한 기도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촉구'하는 기도여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어쨌거나 현실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식의 시각이 불편하다. 불의한 권력자는 비판받아야하고, 권력에서 내려와야 한다. 내 생각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불의한 권력자가 권력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 잠시 '방치'하신 것이다. 교회가 현실의 권력에 타협하는 이러한 태도를 어서 빨리 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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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3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가 우매함을 말하느니라 4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 5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 6 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들을 얻고 부자들이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7 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8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9 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10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11 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소용이 없느니라

1. 지혜자의 마음은 옳은 쪽으로 기우나, 우매자의 마음은 그릇된 쪽으로 기웁니다(2절). 우매자는 그가 행하는 행실로 그 어리석음을 드러냅니다(3절). 우매자의 ‘어리석은 작은 행동’이 모든 것을 망치게 하나(1절), 지혜자의 ‘사려 깊은 행동’이 화를 면하게 합니다(4절). 전도자는 이처럼 지혜와 어리석음을 비교, 반복하여 보여줌으로 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 지혜는, 인간의 한계,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아닐까?

2. 전도자는 지혜자를 분별치 못하는 어리석은 왕과(6절), 애를 쓰지만 지혜가 없어 엉뚱한 결과를 맞이하는(8-10절) 안타까운 경우를 보여줍니다. 또한 많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지혜가 없어 일을 허사로 만드는 허무한 상황(11절)을 그리며, 지혜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최근 나에게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 있습니까? 지혜의 근원되신 예수님께 이를 구합시다.

왕의 어리석음으로 적절하지 못한 사람을 저리에 앉히게 되면 여러 사람이 피곤하다. 비단 왕에게 뿐 아니라 올바른 판단, 지혜로운 판단으로 해야할 일의 경중을 정하고 일의 순서를 결정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혜가 있느냐의 문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는 약 1:5의 말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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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13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14 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15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16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17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18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1. 먼저 시작한다고 앞서가는 것이 아니며, 매일 운동한다고 병들지 않는 것이 아니며, 학벌이 좋다고 고난이 없는 것도 아니며,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11절). 그러나 나중이 먼저 될 수 있으며(마 19:30), 무명하나 유명할 수 있으며, 가난하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할 수 있으며,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일 수 있습니다(고후 6:9-10).


삶이란 왜이리도 아이러니한 것인지, 인간이란 왜이리도 유한한 것인지... 이러한 관찰로부터 '겸손'을 깨달을 수 없는 사람은 정말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2. 진실한 것이 오히려 이 세상에서 조롱당하고 무시당하며 주목받지 못하기도 합니다(16절). 사람들은 외모와 학벌과 물질 등의 외적인 화려함을 추앙하기에 참된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18절). 진실한 것은 요란치 않으며, 작고 겸손하며, 조용하고 느립니다(17절). 오늘 하루를 지내며, ‘진정 참되며 진실한 것’을 보고 붙들 수 있도록 간구합시다.

본문에서 언급된, 저 성읍의 가난한 지혜자. 그의 지혜로 성읍을 구했지만 (아마도) 가난했기에 잊혀졌을 그 지혜자의 삶이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한다. 잊혀질지라도, 더 이상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그런 지혜자의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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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2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6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1. 세상에서 경험하는 차이들 때문에 감정이 교차하며, 이를 극복코자 경쟁과 염려로 삶이 피곤하고 지칩니다. 가까이서 차이 나던 것이 먼 곳에서 보면 달라지듯, 인생도 먼 관점에서 보면 현재에 안달하던 ‘있고 없고, 작고 큰’ 것들이 별스럽지 않게 보입니다(2-3절). 우리는 하나같이 ‘죽음’이라는 동일한 결말을 향하고 있을 뿐입니다(3-6절).


하나님의 무한함과 인간의 유한함이라는 대비 앞에서 다른 모든 차이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삶에서 종교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이 바로 이런 시각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얼마나 자주 이런 시각을 놓치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 속에서 쉽게 자만하거나 절망하는가...

2. 우리가 염려함으로 목숨을 한 자라도 더할 수 없다면(마 6:27), 내일 일을 오늘로 가져와 염려하지 않으며(마 6:34), 주어진 ‘현재’를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 눈앞의 가족을 더욱 사랑하고, 바로 옆의 사람들을 섬기고 기뻐하며, 현재 맡겨진 일을 즐거움으로 성실하게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7-9절).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인상적인 시각이다. 이런종류의 아포리즘이 다 그렇듯이 항상 이 명제가 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갈 것은 참 맞는 말이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이런 종류의 가르침이 '소시민의 삶'에 만족하라는 일종의 아편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체제의 악함으로 인해 고정된 계급간 불평등을 무마하기 위해 종교가 사용되어선 안된다. 동시에 변혁을 위한 투쟁 가운데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잃어서도 안된다. 평화와 정의가 함께 있어야 하듯이 이것 역시 같이 가져가야 할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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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27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1. 지나치게 지혜(의)롭고자 하는 것도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16절). 지혜(의)를 추구하는 자도 언제 넘어질 줄 모릅니다(20절). 빛으로 가까이 갈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이, 지혜(의)를 가진 자는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며 어리석은 자임을 더 많이 인정하는 자입니다. 지혜롭고 의로운 분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으십니다(눅 18:19).

위와 같은 시심의 해석은 오히려 현존하는 권력에 대한 타협을 종용하는 듯한 생각이 든다. 보수기독교가 정권의 불의에 침묵했던 것과 비슷하다.

나는 오히려 본문의 구절을 (비록 성경에 적혀있지만) 비성경적 지혜라고 해석해야한다고 생각한다. 15절에서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다는 화자의 관찰은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타락한 현실에 대한 지적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때문에, 이 관찰에 의거해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라는 충고를 따르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비록 의인이 멸망하고 악인이 장수함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믿고 더더욱 의의 길을 좇아야 할 것이다.

2. 전도자는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살피고 연구하였습니다(25절). 그 결과 악의 유혹이 얼마나 강렬하고, 악의 결과가 얼마나 쓰고 고통스러운지를 깨닫게 됩니다(26절).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올바르게 지었으나, 사람이 꾀를 부려 악을 행하려 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29절). 혹 악(죄)인지 알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행동이나 태도는 없습니까?

본문으로부터 억지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찾아내려고 애쓴 질문 같다. 이것보다는, 오늘날 이처럼 '의인의 멸망과 악인의 장수'에 해당하는 사례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해야할, 추구해야할 의로운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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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10 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15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1. 세상에는 악인과 그의 행위가 쉽게 잊혀지고(10절), 악인에 대해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11절), 악인이 도리어 상을 받는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14절). 그러나 전도자는 일시적으로 악인들이 잘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정의를 행하는 자들이 잘되는 ‘역전’의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12-13절).

정말 그렇다. 얼마나 많은 악인들이 자자손손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지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보고 있다. 과연 이 부조리가 바로잡힐 수 있을까? 너무나 요원한 것 같은 이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다.


2.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람이 모두 이해할 수 없습니다(17절). 사람이 풀 수 없는, 하나님의 권한에 놓인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뜻(분량)을 성실히 준행하며, 그 안에서 누리고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15절). 혹 최근 사람이 해결 할 수 없는 일을 고민하고 근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께서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무기력할 이유는 없다. 오늘 본문의 제안과 같이 "생을 즐길" 필요가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주어진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 이 긴 여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일 듯 하다. 문득 어젯밤에 본 '좀비랜드'라는 영화에서 이미 좀비들로 뒤덮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규칙들을 열거하는 도중에 Rule #32 "Enjoy the Little Things" 하던 것이 생각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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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2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3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4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그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 5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6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8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1. 전도자는 권력자가 권력을 쥐고 있기에 그에게 복종할 것을 권면합니다(3-5절). 그러나 복종할지라도 ‘때와 방법’을 분별하여 현명하게 처신할 필요가 있습니다(5절). 사도들도 권력이 권선징악의 역할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라고 가르칩니다(벧전 2:13-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통치자가 어떠하든 ‘선’을 행하는 것에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롬 13:3; 벧전 2:15).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이중국적(?)자이다. 이땅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가 충돌하지 않을 경우엔 이땅의 권세에 복종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땅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가 충돌할 때에는 당연히 하늘의 권세를 따라야만 한다.
오늘 본문에 대한 해석이나, 베드로전서 2:13-14에 대한 인용을 통해 '기본적으로 권력에게 복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현실 권력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고 비폭력적으로 불복종하는 것을 권해야 할 것이다.

2. 불의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와 방법이 있습니다(6절). 누구도 앞을 예측할 수 없고, 아무도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7절).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하나같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8절). 이 사실을 깊이 기억한다면, 상황에 따라 행할 바를 아는 분별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는다면, 인간 '누구도 앞을 예측할 수 없고, 아무도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라고 보는 것이 옳다. '권불십년'이라는 말과 같이 지금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 아니다. 오직 영원할 것은 하나님의 통치! 그러므로 다시한번 현재 권력에 대한 복종보다는 하나님의 권력에 대한 복종이 더 의미있는 것이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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