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ke 13:22-14:35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너무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정치와 종교의 (아마 경제도?) 중심지 였을 것입니다. 오늘 분문에서 예수님은 이 예루살렘에 대해 탄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몇 번이나(v34)" 품으려하셨지만 오히려 "예언자들을 죽인(v34)" 예루살렘...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종교체제만을 유지하려는 아이러니가 하나님이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분명합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v25)
이어지는 14장에서도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문제로 비슷한 장면이 목격됩니다(vv1-6). 사람을 위한 종교와 율법이 어느새 사람 위에 서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당장 끌어낼 사람들이(v5) 다른 사람, 다른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는 것은 꺼려합니다. 그것도 종교의 이름으로.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오히려 미리 초대받은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와 골목의 가난한 사람들,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 눈 먼 사람들, 다리 저는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는 이야기(vv16-24)를 전하십니다. 기존 종교 세력에 대한 너무나 분명한 경고입니다.
정말 하나님 나라는 Upside-down kingdom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v11)입니다. 그러기에 이 나라에 소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한 사람, 힘 있는 사람이 더 부해지고 힘이 있어지는 나라가 아닌,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이 높아지는 나라. 그 나라를 소망합니다.
창 35:16-20
출산 때가 다된 산모를 데리고 무리한 여행을 계속하다가 결국 난산 끝에 산모가 죽게 되었다. '득남'한다는 산파의 말(v17)은 여인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여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v18)" 곧 "슬픔의 아들"이라 했다.
그 남편, 속이는 자 야곱은 여기서도 장기를 발휘하여 아이의 이름을 "베냐민(v18)", "오른 손의 아들"이라 바꿔 부른다.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속이는 자로 살아온 야곱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임종시에도, 그 유언과도 같은 아들의 이름을 자기 뜻대로 바꾸어 버리며, 자기 뜻이 아닌 아버지와 남편 때문에, 언니와의 경쟁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온 여인의 삶을 부정해버린다.
베들레헴길에 장사된 여인, 라헬을 기리는 것은 이 성경 이야기가 전해질 당시에까지 서있던 "묘비"(v20)뿐이었던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창 35:1-15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야곱의 식구들은 '이방신상'을 지니고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였을까 아니면 그저 장식이나 귀중품으로서였을까?
다시한번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꾼다. 32장에서 이미 바뀌지 않았던가? 혹시 두려워하던 에서와의 일이 원만히 해결되고서 다시 '야곱' 곧 '속이는 자'로 돌아갔던 것일까?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창 34:13-31
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26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2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28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29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너무나 잔인하고 교활한 복수... 한 종족을 이렇게 말살시키는 인간의 악함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창 34:1-12
5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8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9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10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11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12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딸들은 마치 소유물로 여겨졌다. 사실 야곱의 결혼 과정에서도 '레아'와 '라헬' 모두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아버지 라반의 결정에 의해 야곱과 결혼하게되지 않았던가. 오늘, 디나의 경우도 그러하다. 피해자인 '디나'는 언급이 없고 '혼수'니 '예물'이니 하는 소리만 하고 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창 33:1-20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기분파 에서와 계산적인 야곱의 재회, 형제지만 참 다른 두 사람이 드디어 만났다. 자칫 복수극이 될 뻔했던 이 만남이 다행히 해피엔딩이 되었고 야곱은 '제단(v20'을 쌓아 신앙을 고백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창 32:21-32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홀로 남은 야곱, 가족도 재산도 다 보내고. 그밤, 난데없이 나타난 '어떤 사람'.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온 사람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다. 이름을 묻는 야곱에게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고... 그런데 야곱에게 새 이름 '이스라엘'을 주고, 그이름의 뜻을 '하나님과 더불어 싸웠다'라고 풀어 주고 야곱도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라고 해석한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창 32:1-20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마하나임' 이야기가 왜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앞으로의 야곱의 얍복강 씨름의 전조인것인지?
치밀한 야곱의 에서 대면 전략, 먼저 정탐을 하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여러 떼로 나뉘어진 예물로 에서의 마음을 달랜 뒤 만나겠다는...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창 31:43-55
50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51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54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솔직히 야곱보다 라반의 모습이 더 훌륭해보인다. 합리적인 판단과 '약속'을 중시하는 모습, 자신의 신 뿐 아니라 야곱의 신까지도 존중하는 경건한 태도, 그리고 '축복'하고 돌아가는 뒷모습까지도...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창 31:22-42
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37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기회주의적인 사람의 특징은 숙여야할 때와 큰소리 칠 때를 잘 안다는 점일 것이다. 오늘 야곱이 딱 그러하다. 처음 라반에게 따라잡혔을 때(v31, 32)와 나중에 라반이 아무 증거도 못찾은 다음의 야곱의 태도(v36)가 너무나도 상이하다.
라반이 하나님에 대한 꿈을 꿨다는 것이 특이하다(v24). 후에 야곱이 자신이 라반으로부터 도망나온 일에 극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해 추가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라반은 그러한 꿈을 꾸었고 덕분에 야곱이 무사할 수 있던 것일까? 어쨌든 분명한 점 하나는 야곱이 라반을 무사히 떠났다는 것이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