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do at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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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C

memories2009. 9. 1. 15:04
계도스팟 리뉴얼 기념으로 쓰고 있는 회상 시리즈 두번째 글입니다.
첫번째 글은 여기에 있습니다.

 

8비트 Apple II+로 시작된 컴퓨터와의 인연은
고등학교 진학후 컴퓨터 동아리에 가입하도록 저를 이끌었습니다.
HYCC (Han Young Computer Circle)라고 한영고등학교 컴퓨터부였지요.

 

1년에 한번씩 '한맥제'라는 축제가 열리면,
학교 컴퓨터실에 각자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전시하는 것이
동아리의 가장 큰 이벤트였는데요.
저는 한 학년위의 H/W에 관심이 많은 선배가 동아리 내에 만든 H/W부 소속이어서
'마이크로 마우스'를 만들어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배야, 그쪽에 관심이 많고 공부도 많이하고 했지만
저나, 같이 H/W 부에 속한 동기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대로
주말에 선배와 함께 부품 사러 용산전자상가에 다녀오고
스티로폼 깎아서 미로 만들고 할 뿐이었지요.

 

이런 엉성한 조직에 의해서 만들어진 '마이크로 마우스'는 결국 동작하지 않았고,
그래도, 만든 미로와 '마이크로 마우스'가 아까와서 축제날 컴퓨터 실 앞에 가져다 놓고
"마이크로 마우스 동작 시범 시간 : 오후 1시까지" (오후 2시에 꺼내 놓고서는)
이런 식으로 안내를 붙여 마무리를 했습니다.

 

저는 다른 동기들과 H/W에 대한 실력이나 경험이 별 차이가 없었지만
선배따라 용산 상가에 한번이라도 더 갔다는 이유로 차기 H/W 부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음 해에는 '마이크로 마우스' 같은 거창한 프로젝트는 애초에 포기하고
컴퓨터로 장난감 탱크를 전후좌우 움직이도록 제어하는 것이랑
LED를 죽 이어 붙여 만든 전광판 보드를 컨트롤하는 정도를 전시했습니다.

 

이외에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로는 당시 근처 여고의 전산부 축제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선배로부터 늦은 저녁 여고 전산실로 호출을 받아 투입된 적도 있었습니다.
나름 저 혼자 선배로부터 지명받아 호출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하고
여고생들 앞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하는 것처럼 우쭐했지만
실제로 했던 일은, PC Tools의 Hex 에디터로
다른 데서 만든 사주 프로그램의 크레딧을 그 여고 전산부이름으로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야 축제 때 그 여고 전산부를 방문한 손님들이
프린트된 사주를 받아들 때 그밑에 그 학교 전산부 이름이 찍히게 되니까요.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컴퓨터를 다루면서 보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대학진로도 컴퓨터쪽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첫 컴퓨터 Apple II+

memories2009. 8. 29. 15:25
10년 가까이 운영해온 개인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면서
문득 이제까지 컴퓨터 관련해서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한번 적어볼까 합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컴퓨터는 Apple II+ 였습니다.
정확히는 세운상가에서 만들어진 Apple II+ 무단복제품이었지요.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88년으로 기억되는데
어느날 퇴근하시던 아버지께서 아파트 문을 직접 열지 않고 초인종을 누르셨습니다.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 두팔 가득 안긴 커다란 상자 안에 제 첫 컴퓨터가 들어 있었지요.

 

어떤 계기로 아버지께서 그날 그 컴퓨터를 사가지고 오셨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다가오는 시대엔 이런걸 좀 다뤄봐야 한다고 생각하신건지,
아니면 매일같이 아파트 윗층 사는 두살 어린 동네 동생 집에 놀러가서
그집 애플 컴퓨터를 갖고 논다는 얘기를 듣고 사오신 건지...

 

그래서 처음 접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Apple Soft BASIC이었지요.
컴퓨터와 함께 딸려온 (아마 교학사에서 나온) 책으로 공부하며,
당시 컴퓨터 잡지 뒷쪽에 실려있던 게임 코드들을 몇시간 동안 입력해서 실행해보며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컴퓨터로 3D 화면을 만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등고선으로 모자를 만드는 굉장히 긴 분량의 코드를 입력하고
한참 뒤에 컴퓨터 화면에 모자가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입력과정에 무슨 실수가 있었던지 중절모 형태여야 할 모자가
가운데 부분이 한번더 솟아오른 이상한 형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컴퓨터에 얽힌 재미있는 추억 하나는 처음부터 조이스틱 포트가 접촉불량이어서
게임을 실행시키면 무조건 아래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고쳐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게임을 할 때마다
조이스틱 포트 윗쪽의 컴퓨터 본체를 여러번 눌러주어 제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나서야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귀찮아서인지 조이스틱을 쓰는 아케이드 스타일 게임보다는
키보드 만으로 하는 울티마 같은 RPG 게임이 더 좋아져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 울티마 IV 였는데,
정말 이 게임을 하면서 영어 독해가 많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사전 찾기 귀찮아서 대충 직독직해하면서 게임을 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나오는 모든 대화들을 이해하지는 못해 게임을 클리어하진 못했지만
지금도 어느 일요일 오후, 울티마 세계의 남쪽 아래에 있는 어떤 섬의 여관에서
땅콩 버터 먹던 아이 NPC와 이야기하다가 "먹고 싶으면 아" 하라는 대사에 "아"라고 입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이 이야기는 지금 회사 면접 볼 때 써먹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