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do at TiStory

처음부터 중도층 표를 누가 가져오냐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철수에게 희망을 가졌었는데요, 결국 결과가 이렇게 나왔네요.

제 개인적인 생각에 한국은 민중혁명이 가능한 나라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아직은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집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합리적인 보수 우파 정당의 출현 뿐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민주당은 스스로를 진보라고 믿고 있는 것 같고, 그 지지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스탠스가 바로 이번 대선 결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우리가 믿는 바만이 정의롭고 옳고 그렇게 생각되겠지만, 저쪽에서 볼 때는 자기들이야말로 그렇거든요. 이렇게 상반되는 입장에서 가능한 시나리오는 번갈아가면서 정권을 잡는 것 뿐인데 그 결과로 공주님 당선이라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지요.

만약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지 않고 민주당이 제가 앞에서 말한 합리적인 보수 우파 정당이 되려면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 스스로 진보라고 믿는 분들은 좀더 왼쪽으로 움직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현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지지자들 중에서 합리적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가져올 수가 있을테니까요. 그게 안된다면, 결국은 새로운 정당이 출현해서 민주당 지지자들 중 우파 성향의 유권자들과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지지자들 중 합리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을 흡수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안철수가 있겠지요. 앞으로 5년간 안철수가 해야할 일은 그런 정당을 건설하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총선이 4년후에나 있어서 참 쉽지 않은 일일듯 싶습니다.

아무튼 국민의 절반 정도가 서로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그나마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은 이제 좀 그만해먹어야 할 것 같은데요, 국민 모두가 생각이 일치하는 100% 대한민국은 불가능하고 되어서도 안되니까요. 말이 좀 통하는 합리적인 우파가 등장하기를 염원해봅니다.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정도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알수 없는 어떤 일이 생기면 왜 이러한 일이 생겼는지, 어떤 과정으로 일이 생긴건지를 합리적인 설명을 찾을 때까지 꼭 파악하려 합니다.

17세기 유럽의 계몽주의가 그전 중세시기의 암흑과도 같은,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을 이성의 빛으로 설명하려고 들었던 것은 그래서 무척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보입니다. 종교에 있어서도 그러한 시도가 종교개혁으로 나타나게 되었겠지요.

하지만, 종교개혁에 의해 생겨난 개신교가 큰 교세(?)를 떨치는 한국에서 개신교는 "개독교"라는 치욕적인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망가져버렸는데요, 저는 그 이유가 오히려 이 "신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태양계를 너머 우주 저편에까지 이르고 있고, 神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일본에 쓰나미가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 것은 일본에 만연한 우상숭배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까지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무슨 자동 판매기인 것처럼, 입력이 일정할 때 출력도 일정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들도 보입니다. 헌금을 많이하면 복받는다는 얘기 말입니다. 이러한 식의 신앙은 제 생각에는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생각이 듭니다. 인간보다 높은 경배의 대상이 아닌,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기계장치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인류는 계몽주의 시대를 넘어서 이제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에 한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성을 넘어선 신앙의 종교가 오히려 그 흐름에 뒤쳐지고 있습니다. 이제 신비가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중세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세의 암흑기와 계몽주의 시대를 정반합하여 새로운 신비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아는 것까지는 안다고 하고, 또 알려고 계속 애쓰지만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것을 무리하여 설명하려고 기계적인 신, 차가운 하나님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놀라운 것들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나처럼 작은 존재에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노래하는 시편 기자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 말입니다.


통신사가 mVoIP 막는 이유가
국부유출이나 인터넷 붕괴를 막기 위한 거라는 저들과 


교회세습은 틀린말이니 쓰지 말자고 세습옹호하는 한기총 둘다 


기득권 옹호를 위한 아전인수식 논리... 


에휴...

한심하다.
대적해서 기도해야할 대상이 고작 레이디 가가인지...

국가권력이 자국민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현장이나 자본권력이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이의 삶을 짓밟는 현장이 아니라 고작 내한 공연하는 팝 가수의 공연장 앞에서의 저런 절절한 기도의 모습이라니...

그들의 하나님은 빌보드 차트나 관장하는 정도의 신이란 말인가?
신앙의 지표를 예배 출석률로 치환시켜놓은 한국교회가 길러낸 젊은이들의 모습이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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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본 지진과 쓰나미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히 일본이 우상이 많아서 그랬다는 식의 종교 지도자들의 망언을 접하면서 신앙인으로서 마음이 착잡하다.

전능한 인격신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무자비한 자연재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앞에서 이야기한 종교 지도자들과 같이 '죄가 많아 심판당한 그들 일본인들'과 '그들에 비해 죄가 적어 심판을 면한 우리들'로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절대타자'이신 신 앞에 모든 인간은 같은 입장을 가진 '우리'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이 심판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 중 일부, 특별히 '우리'를 대표해서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 고난을 당한 것이다. 적어도 신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신 앞에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나보다 못한 그들을 상정하여 정죄할 사치는 없다.

두번째로, 내가 믿는 신은 이러한 무자비한 심판을 아무 거리낌없이 저지를 수 있는 잔인한 존재인가하는 의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생각을 가진 종교인들이 많이 있고 앞의 종교 지도자들도 그러한 생각을 가르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그러한 신을 신앙할 필요를 못느끼겠다. 무자비하고 비인격적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 어떤 심판을 내릴 지 모르는 존재... 나는 그러한 신이라면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신앙하는 신은 이런 신이 아니다. 그러면 그 신은 전능한 것이 아니라 무능하기에 이러한 자연재해를 막을 능력이 없었던 것인가? 이런 신이라면 동료 인간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나는 이러한 신 역시 거부한다. 굳이 신앙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능하지만 잔인하지 않은 신이 이러한 자연재해를 용납한 이유는?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모른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라고 믿는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에 대해 완벽한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실제로 신의 이름, 신의 뜻을 빙자한 이들의 만행을 우리는 이미 역사 속에서 많이 보이왔다. 결국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전능하고 자비로운 신을 신앙하는 신앙인은, 괜히 어설픈 논리로 신비를 설명하려들거나 고통받는 이웃을 정죄하는 대신,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이웃의 고통을 덜기 위해 기꺼이 내어주며 마음으로 같이 아파하고 전능하고 자비로운 신께서 상한 마음들을 위로하시고 무너진 삶들을 다시 세워달라고 기도할 일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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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화

on the belief2009. 6. 10. 03:47
대화 1 kz: 신을 믿는다는 건 뭔가요? 그냥 '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해. 끝.'이면 되나요? 아니면 어떤 행동양식 같은 걸로 알 수 있는 건가요?

꼭 외부검증 문제가 아니라 자기검증 단계에서도 신을 믿는다는 게 뭔지 알아야 내가 신을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_ 전 종교나 믿음에 대해 잘 모르니 궁금해서 그럽니다 신학이나 철학에선 뭐라고 하나요?


gyedo: 저는 '신앙'은 세계관/가치관/행동양식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같은 행동양식을 드러낸다고 해도 세계관/가치관이 다르면 같은 신앙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종교는 잘 모르겠고, 제가 믿는 기독교에 대해 한정지어 말씀드린다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적 악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때문에 '자기검증' 단계에서는 자신의 동기가 얼마만큼이나 '이타적'이려고 하는지를 돌아봄으로써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kz: '인간의 본성적 악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많은 종교나 가르침이 있지만, 그런 결과를 내기까지의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각 종교는 다르다고 바꿔서 이해해도 될까요? / 제 경우 '사람이 착하게 살 수 있게 한다면 종교든 뭐든 좋고, 종교 권위체를 만드는 건 별로고, 그래서 가급적 거대 교세를 자랑하는 동네랑은 안 놀아' 정도의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종교라는 게 왜 그리 갈라져 있어야 하는 건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말씀 주신 게 어느 정도 답이 될 것 같습니다.


gyedo: 그렇지요.


kz: 왕년에 어느 르뽀에서 아기교였나 사이비교 신자로 거기 들어가서 막 박수치고 교주 받들고 이런 사람을 취재한 걸 봤었는데 그게 참 충격적이었어요. 내가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고 좋다고 인터뷰한 그 아저씨가 그러더라구요. 이쯤 되면 행복이 뭐고 종교는 뭐고 인생의 의미란 뭔지 혼란스러워질만 하죠. ㅋ


음… 근데 애초에 제 의문이랑은 안 맞는 질문을 하고 답을 했던 것 같네요. 만들어진 신에서 말하는 건 창조주로서의 유일신일 텐데, 질문을 제대로 하자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무엇인가?'가 되겠네요. (이런 실수를)


gyedo: 이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방법이 '진화론'일 수도 있구요

중요한 것은 이 세계는 무의미한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라는 것.

그리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인간의 본성적 악함과 한계'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실천규범으로써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지요.


대화 2

오마담 : (도킨스)의 어린아이와 어른의 비유는 인류의 성장으로 봐야 합니다. 즉 이 세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 점 더 '신'을 믿는것보다는 믿지 않는 사회로 이전해 가는것으로 봐야 하는것이겠지요.


gyedo: '신'을 믿지 않는 사회로 이전해 간다는 것을 '성장'이라고 보신다는 것에 반대합니다 ^^ 

물론 '비합리적' 신앙을 벗어나는 것은 '성장'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오마담: 아마도 이성을 극단적으로 가져간다면 불가지론이 그 끝일 것이고, 이후에 어떤 포지션을 취하는가 하는것은 그 사람이 지향하는 바와 관계가 있겠지요. 


종교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킬수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하게 보일수도 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종교가 현대 사회에 있어서 부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gyedo: 그게 저는 '과학주의'를 벗어난 합리적인 신앙에는 '불가지'가 포함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오마담: 그리고 이건 토론으로 해결이 될 만한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gyedo: 그렇지요 ^^ '대화'할 뿐

'반대'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후회중 ^^


오마담: 과학은 과학의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는 증명도 부정도 할 수 없죠.


gyedo: 바로 그거지요 ^^


오마담: 과학이 할 수 있는게 있다면 종교적 주장중에서 어떤 특정한 것들을 틀렸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죠. 예를들어 지금까지의 과학적 증거로 봐서 지구가 6000년전에 만들어진건 아니라는 것과 같은 것들요.


gyedo: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구요. 제가 인용한 저 블로그 주인장도 그래요

심지어 저 블로그 주인장은 그런걸 주장하는 책도 쓰셨다능 ^^


오마담: 그리고 그게 신이 존재하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것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런게 매달려서 과학이 틀렸다고 하는건 너무 문자에 매몰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고요.


gyedo: can not agree more 에요 ^^ 


오마담: 제가 제일 위에 쓴건 도킨스의 비유에 대한 비판이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예를들어 1000년전 유럽사회에서 신을 믿는 사람의 비율과 현재 유럽사회의 신을 믿는 사람들 비율은 비교해본다면 아마도 현재 신을 믿는 사람의 비율이 훨씬 낮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도킨스는 그런 입장에서 어른과 아이의 비유를 사용했겠죠. 지적으로 더 많은 것을 습득한 현대를 과거보다는 어른이라고 비유를 한 것일테고요.


대략… 제 생각은 그렇다는…


오마담: kz님의 글에 댓글 다신걸보니 '신을 믿는다'는 부분에 대해서 아주 다른 생각이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gyedo: 무슨 말씀이신지?


오마담: 일단 '신'이라는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같은게… 사람들마다 '신'을 다른 의미로 사용해서요.


gyedo: 아 저는 기독교인이라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신'을 의미한 건데요


오마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적 악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건 꼭 신을 믿어야 하는건 아니기도 하고요.


기독교의 신이라고 하심은 '인격신'을 말씀하시는건가요?


gyedo: 네, 저렇게 이야기한 것은, 기독교인인 제 입장에서 '신을 믿어야' 상대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구요

그 다음에, 그 '신의 명령'인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는 거지요

'인간의 한계'야 자연에 대한 경외에서도 올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이타적 삶'으로 연결되지는 않으니까요


오마담: 그 부분에서는 많이 갈리는것 같네요. 저는 그게 꼭 신을 믿어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닌데…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라고 하는것도 내가 나를 소중히 하고 그만큼 다른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gyedo: 저는 이부분이야말로 차이점인 것 같아요

전 '인간의 한계' 때문에 그것이 안된다고 보는 거지요


오마담: 내가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 모든 사람이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것 그것이 바로 합리성의 증가가 아닌가 하는 것이고요.

네… 


gyedo:  전 그게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깨어진 철학사조와 유사하다고 보지요


오마담: 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이후의 전쟁은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다는걸 가리켜주는 지표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고요.


gyedo: 결국 차이점은 저는 그게 '가야할 길이 멀다'가 아니라 '갈 능력이 안된다'로 본다는 ^^ 그래서 제가 유신론자지요


오마담: 그렇지만 언젠가는 획득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요.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 이거 정의하려면 시간 오래걸릴듯하지만 -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요. 종교를 통하지 않고 인간의 합리성을 통해서 그 길로 가는게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믿는편이고요.


그렇지요. 뭐… 공격하자면… 인간의 합리성을 통해서 그 길로 갈 수 없다면 종교를 통해서 가는것도 요원하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뭐, 알 수 없으니… 그냥 신념인셈이죠.


gyedo: 네 결국은 '믿음'이 다른거에요.

대화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또 이야기해요. 이젠 일을 좀 해야 ^^


오마담: ㅎㅎ… 재미있는건 용어선택도 좀 다르다는거네요… 저는 '신념'이라는 단어를 gyedo님은 '믿음'이라는 단어를… 뉴앙스가 약간 다르네요.

네. 안녕히.


gyedo: 단어 사용은 의도한거에요 ^^ 안녕히~


오마담: 넵. 알고 있습니다. 인용부호는 괜히 있는게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