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do at TiStory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정도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알수 없는 어떤 일이 생기면 왜 이러한 일이 생겼는지, 어떤 과정으로 일이 생긴건지를 합리적인 설명을 찾을 때까지 꼭 파악하려 합니다.

17세기 유럽의 계몽주의가 그전 중세시기의 암흑과도 같은,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을 이성의 빛으로 설명하려고 들었던 것은 그래서 무척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보입니다. 종교에 있어서도 그러한 시도가 종교개혁으로 나타나게 되었겠지요.

하지만, 종교개혁에 의해 생겨난 개신교가 큰 교세(?)를 떨치는 한국에서 개신교는 "개독교"라는 치욕적인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망가져버렸는데요, 저는 그 이유가 오히려 이 "신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태양계를 너머 우주 저편에까지 이르고 있고, 神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일본에 쓰나미가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 것은 일본에 만연한 우상숭배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까지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무슨 자동 판매기인 것처럼, 입력이 일정할 때 출력도 일정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들도 보입니다. 헌금을 많이하면 복받는다는 얘기 말입니다. 이러한 식의 신앙은 제 생각에는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생각이 듭니다. 인간보다 높은 경배의 대상이 아닌,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기계장치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인류는 계몽주의 시대를 넘어서 이제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에 한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성을 넘어선 신앙의 종교가 오히려 그 흐름에 뒤쳐지고 있습니다. 이제 신비가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중세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세의 암흑기와 계몽주의 시대를 정반합하여 새로운 신비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아는 것까지는 안다고 하고, 또 알려고 계속 애쓰지만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것을 무리하여 설명하려고 기계적인 신, 차가운 하나님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놀라운 것들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나처럼 작은 존재에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노래하는 시편 기자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