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do at TiStory

전계도씨, 미국 출장 좀 갈 수 있겠어요?
최소 3개월에서 최장 6개월 정도...

2002년 10월 쯤이었을까요? 팀장님이 저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제가 일하던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 (그때는 벤쳐라고 보통 불렀는데요)은 미국 헐리웃에 지사가 있었습니다. 본사에서 개발을 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미국 지사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었는데요(한국에서는 고객이 너무 없어서, 미국 지사쪽에 힘을 싣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아무래도 현지에서 직접 대응을 하면서 개발을 하는게 낫겠다는 판단을 경영진에서 내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결혼 3주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신혼이었는데, 이렇게 기약없이(?) 오래 떨어져 있느니 같이 가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일하는 동안 아내는 영어학원도 다니고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나이브한 생각을 했죠. 다행히, 회사에서도 (라기 보다 팀장님 및 팀원들의 양해로) 아내의 비행기표는 제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출장을 함께 가도록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2002년 11월, 추수감사절에 저희는 LA 공항에 발을 딛게 됩니다. 당시에 미국 지사에는 이미 한국 직원 A씨가 서비스 운영을 위해 장기출장중이었거든요. A씨께서 공항으로 저희를 마중나오셔서, 마침 LA 인근에 살고 있던 저의 지인 집으로 저희를 데려다 주셨습니다. 회사에서 거처를 마련해줄 때까지 처음 2주간은 그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거든요. 위의 사진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던 그때 그 지인의 집 건너편의 나무를 찍은 사진입니다. 아래 사진은 방 2개 아파트에서 저희에게 내어주신 방과 IKEA 침구 사진이구요 ^^

 

 

그때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살게 될지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차도 없어서 늘 회사 동료 A씨나 지인의 차에 실려다니면서 찍었던 아래의 사진이 불안하면서도 뭔가 설레었던 그때 제 마음 같네요.

 

 

얼마뒤 한국에서 팀장님과 다른 직원 한명(B)이 더 출장을 나오게 됩니다. 그해 겨울, 미국 지사에서 일이 좀 되는 조짐이 보였거든요. 회사에서는 방 2개짜리 아파트를 빌려줬는데, 저와 아내가 방 하나를 쓰고, 나머지 방 하나를 나머지 남자 3명(팀장님과 A, B)이 쓰는 묘한 동거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는 아무래도 출장중이고 정신없이 일할 때여서 크리스마스와 일요일 중 하루를 일해야 했어요. 저는 아내도 있고 하니까 크리스마스에 쉬고 일요일에 일하겠다고 했고, 팀장님과 다른 직원들은 크리스마스에 일하고 일요일에 쉰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몰랐거든요.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보내는 날이라 문연 가게도 없이 썰렁하다는 것을... 갈 곳이 없었던 저랑 아내는 산타모니카 바닷가를 향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이에요. 저 바다 건너에 가족들이, 친구들이 있었겠지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