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do at TiStory

어젯밤에 아내가 주문한 물건을 찾으러 동네의 FedEx Kinko's에 다녀왔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미국 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여기에 소개하려고 합니다. FedEx는 아시겠지만 배송업체이고, Kinko's는 24시간 오픈해서 출력, 복사등을 해주는 회사이지요. 2004년에 FedEx가 Kiko's를 인수해서 이제는 FedEx Kinko's라고 불리고, 매장에서 출력, 복사등의 업무 외에 배송 관련 업무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밤 8시 30분 쯤 도착했는데 약간 피곤해 보이는 직원 2명과, 그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카운터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한쪽에 놓인 컴퓨터에서 작업중인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의 업무 교대 규칙이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이런 (미국 치고는) 늦은 시간게 근무하는 직원들은 늘 좀 피곤해 보여요. 직원 중 한 명은 뭔가 준비를 잘 해오지 않아서 도움이 많이 필요한 듯한 한 백인 남자 손님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다른 직원 한 명이 다른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제 바로 앞에는 남미계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처음 든 생각은, 복사나 인쇄 등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다른 작업을 위해 온 손님들과 달리 저는 배달된 물건 하나만 받아가면 되는데,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미국에서 살다보면 자주 경험하는 것이지만, 어느 가게든 기다리는 손님들을 빨리 도와주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돕고 있는 손님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줄에서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런 방식은 결과적으로 좋게 생각됩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제 뒤에 기다리는 손님들 때문에 소홀하게 대접받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바로 앞의 남미계 아주머니들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이분들이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듣게 되었는데, 보니까 문서 몇장을 복사하고, 그리고 손으로 적어온 한 페이지가 좀 안되어 보이는 걸 타이핑해서 프린트해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매장안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는지 물었고, 직원은 그렇긴 하지만 시간당 사용료를 내고 직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이러한 직원의 이야기에 살짝 당황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 짐작에, 타이핑이나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지 않으시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리 싸지 않은 시간당 사용료를 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아 사용시간이 길어질까 걱정하는 듯 보였습니다. 계산을 은행 직불 카드나 크레딧 카드로 하겠냐고 묻는 직원에게 자기들은 그런게 없으니 현금으로 계산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이분들이 아마도 서류미비 이민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물건을 픽업하러 왔다고 하자, 그 직원이 카운터 너머 자물쇠로 잠긴 케이지를 열어서 받는 사람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제 아내가 주문한 물건이라서 제 아내 이름을 이야기 하자, 본인이 아니면 물건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아내가 인터넷 주문한 곳에 제 이름을 Pickup People에 추가해두었기 때문에, 그 확인 메일을 보여주면서 제 아내 앞으로 온게 맞긴 한데, 이렇게 내 이름도 Pickup People란에 있다라고 이야기 했는데, 메일을 볼 필요도 없고, 규칙상 패키지에 이름이 적혀 있는 본인이 아니면 절대로 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메일을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사정해서 결국 메일을 보긴 했지만, 여전히 이 메일이 제가 조작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서 규칙은 규칙이라 절대 물건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물건을 받지 못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면, 그 직원의 말이 맞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된 사람에게 물건이 전해질 경우 생길 피해를 막기 위해선, 항상 원칙대로 대처하는 것이 낫겠지요. 이런 원칙에의 집착(?)같은 부분들에서 참으로 무식하게 보일 정도로 미국사람들은 철저합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정말 시스템에 의해 돌아갑니다. 그리고, 시스템 말단의 직원에겐 어떠한 유연함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따르지 않았을 때의 문책이 더 크지요. 그러니, 이런 직원의 입장에서는 원칙대로 하는 것이 가장 맞는 거지요.

이와는 별도로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아까 그 남미계 아주머니들의 모습입니다. 제 추측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그런 짧은 문서 하나 타이핑하고 프린트 하기 위해 FedEx Kinko's 매장을 찾아야 했던, 평소에 컴퓨터를 익숙하게 접해보지 않았기에 그런 짦은 문서 타이핑하는 것을 힘들어 하던,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어렵게 벌었을 돈을 지불해야 했을 그들의 모습이 제 마음에 남습니다. 내가 도와준다라고 말해볼걸 그랬나 하는 후회와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