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do at TiStory

첫 컴퓨터 Apple II+

memories2009. 8. 29. 15:25
10년 가까이 운영해온 개인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면서
문득 이제까지 컴퓨터 관련해서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한번 적어볼까 합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컴퓨터는 Apple II+ 였습니다.
정확히는 세운상가에서 만들어진 Apple II+ 무단복제품이었지요.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88년으로 기억되는데
어느날 퇴근하시던 아버지께서 아파트 문을 직접 열지 않고 초인종을 누르셨습니다.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 두팔 가득 안긴 커다란 상자 안에 제 첫 컴퓨터가 들어 있었지요.

 

어떤 계기로 아버지께서 그날 그 컴퓨터를 사가지고 오셨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다가오는 시대엔 이런걸 좀 다뤄봐야 한다고 생각하신건지,
아니면 매일같이 아파트 윗층 사는 두살 어린 동네 동생 집에 놀러가서
그집 애플 컴퓨터를 갖고 논다는 얘기를 듣고 사오신 건지...

 

그래서 처음 접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Apple Soft BASIC이었지요.
컴퓨터와 함께 딸려온 (아마 교학사에서 나온) 책으로 공부하며,
당시 컴퓨터 잡지 뒷쪽에 실려있던 게임 코드들을 몇시간 동안 입력해서 실행해보며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컴퓨터로 3D 화면을 만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등고선으로 모자를 만드는 굉장히 긴 분량의 코드를 입력하고
한참 뒤에 컴퓨터 화면에 모자가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입력과정에 무슨 실수가 있었던지 중절모 형태여야 할 모자가
가운데 부분이 한번더 솟아오른 이상한 형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컴퓨터에 얽힌 재미있는 추억 하나는 처음부터 조이스틱 포트가 접촉불량이어서
게임을 실행시키면 무조건 아래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고쳐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게임을 할 때마다
조이스틱 포트 윗쪽의 컴퓨터 본체를 여러번 눌러주어 제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나서야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귀찮아서인지 조이스틱을 쓰는 아케이드 스타일 게임보다는
키보드 만으로 하는 울티마 같은 RPG 게임이 더 좋아져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 울티마 IV 였는데,
정말 이 게임을 하면서 영어 독해가 많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사전 찾기 귀찮아서 대충 직독직해하면서 게임을 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나오는 모든 대화들을 이해하지는 못해 게임을 클리어하진 못했지만
지금도 어느 일요일 오후, 울티마 세계의 남쪽 아래에 있는 어떤 섬의 여관에서
땅콩 버터 먹던 아이 NPC와 이야기하다가 "먹고 싶으면 아" 하라는 대사에 "아"라고 입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이 이야기는 지금 회사 면접 볼 때 써먹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